* Anyone Who You Need An Object Of Love, An Object Of Devotion. Parents, Children, Spouses, Mentors,

* Anyone who You need an object of love, an object of devotion. Parents, children, spouses, mentors, friends, gods, etc. Everything, even life, for the can dedicate It is possible to empty me. should be able to set me on fire, You should be able to throw it all over your body. What does love and devotion bring? It's not what you want to get. pain and hurt and sacrifice to be determined, and to find peace and joy in it is to get through the object of devotion I am growing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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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블로그가 7살이 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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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관용을 배우다   2022-0513 -JJD-

관용은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관심을 두거나 조사하지 않고 관대하고 관대함을 의미합니다.

경건은 선할 필요가 없고 가혹함은 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목적을 위해 사용됩니다.

그들이 해를 끼치는 사람을 용서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관대하고 사악할 것입니다.

바다는 모든 강에 열려 있고 관용은 크며

 산의 절벽은 서 있어도 욕망이 없습니다.

푸쉬킨은 "많지 않으면 참을성이 없으면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없다.

 

화를 내는 것은 나약함과 미숙함의 표시이고

침착하고 두 번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나이 오십에 아직 벌컥 화를 내는 이 사람도 아직 관용에

도달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남은 삶에 유지를 반복하는

덜 익은 청춘이다!

10 months ago

제대로 살고 있는가?

또다시 의문을 던저본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지만

지나간 시간이 있어 부족한 내자신은

여기에서 잠시 멈추어선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하고 지난 후회의 시간은 나는 제대로된 사과도 하지못하였다

모든것이 나로 인한 인습에서 비롯된

실수 투성이 삶에서 내자신은 모두에게 미만합니다 라고 사과 하고싶다.

부족한 나로인하여 수많은 실수를 받아주고 상처로 아픔을 숨기고 살아간 날들을 후회하며 나로인한 상처받은 날들을 살아온 주위의 모든분들께 용서를 구합니다.

죄송합니다.

삶의 완성이 어디인지 알수 없지만

부족한 인성의 완성이 되지 못한 날들 속에서 미완의 도덕을 찾아 지금도 아울어진 나의 삶은 도덕을 완성을 찾아 나는 나의 길을 가고있습니다.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살고 있는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1 month ago

* 불교의 이해 *

불교의 근본 사상...(6) 가전연경(迦전延經)의 정견(正見)

[불교의 근본사상] 매이지 않고 여의지 않는 영원한 진리

10. 가전연경(迦전延經)의 정견(正見)

가전연경이란 근본불교에서 가장 핵심되는 경입니다. 이 경은 부처님이 정등각(正等覺)한 내용, 즉 중도(中道)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가전연경에 대해서 논의가 많았습니다. 그런 만큼 아주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또 중도에 대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면 이 가전연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가전연이란 부처님 신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논의제일(論議第一)이었던 가전연존자를 말합니다. 아주 의논을 잘하고 논의에 밝은 분이었습니다.

어느날 가전연이 부처님에게 물었습니다.

「대덕(大德0이시여 정견(正見)을 갖추어야 한다, 정견을 갖추어야 한다 하시니 정견이란 어떤 것입니까?」

모든 세간의 학문이나 종교는 무엇이 있다(有)든가 무엇이 없다(無)든가 하는,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見)의두 가지 견해에 떨어져 되어 있습니다. 일체의 모든 상대적인 대상에서 가장 기본되는 견해가 유·무라는 견해이니 이 상대적인 유·무가 완전히 해결되면 그밖의 모든 상대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유와 무를 대표로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먼거 고(苦)와 낙(樂)을 가지고 말씀하셨지만 그때는 오비구(五比丘)가 고행(苦行)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고와 낙을 말씀하셨던 것이고 이 가전연경에서 정견(正見)이라는 근본문제를 가지고 깊게 설명함에 있어서 일체 세계의 대표적인 상대인 유와 무를 들은 것입니다.

변견(邊見)이란 한쪽으로 치우친 편견이라는 뜻입니다.

「가전연아, 정혜(正慧)로써 여실(如실)히 세간의 집(集)을 관(觀) [正觀生]하는 자(者)에게는 이 세간에 무인 것이 없다.[非無] 가전연아, 정혜로써 여실히 세간의 멸(滅)을 하는 자에게는 이 세간에 유인 것이 없다.[非有]」

남전대장경 제13권 상응부경 가전연경(南傳大藏經 第十三卷 相應部경 迦전延經)

집(集)이란 4성제(四聖제)의 집제(集제)이니, 집제란 연기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기법(緣起法)에도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관으로 연기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이 일어난다,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생겨나 살아가고 있고, 있음으로 하여 결국 존재해 있음을 말하니 이러한 현상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세간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여 보았자 통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 책상도 있고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세상 모든 것이 없다는 견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생(生)하는 법을 바로 본다(正觀生)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다 존재해 있고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있는 것을 바로 보면 없다는 견해는 있을 수 없으므로 결국 없음이 아닌(非無) 것입니다.

멸(滅)이란 사성제(四聖제)의 멸제(滅제)이니 멸제란 역관(逆觀)으로 연멸법(緣滅法)을 이르는 말이니 설명하자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것으로써 책상도 나무가 썩어 버리면 없어지고 너도, 나도 촛불도 시간과 공간이 다하면 없어지기 마련이며 그러므로 모든 것은 또 다른 한편에서 관찰해 보면 소멸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을 없어지는(滅) 법을 바로 본다.(正觀滅)는 것이며 이런 견해로 세상을 보면 모든 존재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내가 없는 것을 바라보면 있다는 견해는 있을 수 없으므로 결국 있다는 것이 아닌(非有)것이 됩니다. 따라서 없는 것이 아닌 있다는 견해는 틀렸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없어지는 것을 보고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고 다시 모든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견(有見)측에서는 무견(無見)이 틀리고 무견 측에서는 유견이 틀리는 것입니다.

「가전연아, 이 세간은 다분히 방편(方便)에 취착(取着)하며 계교(計較)하며 사로잡히(囚)나니 성제자(聖弟子)는 이 마음의 의처(依處)에 취착하며 계편(計便)되어서 「나의 나」라고 사로잡히지 않으며 착(着)하지 않으며 머물지(住) 않고[囚有消滅], 고(苦)가 생(生)하면 생한다고 보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보아[定觀亦生亦觀] 혹(惑)하지 않으며 의심(疑心)하지 않으며 타(他)에 연(緣)하는 바 없이 이에 지(智)가 생(生)하나니라」

이 세상 사람들은 어째서 무엇이 있다, 무엇이 없다하는 변견에 집착하느냐 하면 그것은 사량분별 때문입니다. 아(我) 주관과 아소(我所), 객관등의 모양에 사로잡혀 사량분별하는 이것을 여기서는 방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변견이 생기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사량분별에 의한 집착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제자, 즉 부처님의 제자는 사량분별에 의한 집착심을 버리고 모든 분별심, 생멸심을 떠나버리며 결국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닌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고(苦)가 생하면 생한다고 하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바로 본다는 말입니다. 그냥 고가 생하면 생한다고 보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보는 것과는 차원이 틀립니다. 세간에서 보는 것은 분별심으로 보는 것이고 부처님의 제자는 분별심을 떠나서 보기 때문에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집착하고 계사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로 잡히거나 머물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무주심(無住心), 무분별심(無分別心)에서 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변견은 분별심이 근본이 되어 있고 부처님 제자의 정견은 무분별심이 근본이 되고 있는 것이니 불생불멸의 경지에서 생멸을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는 모든 분별에 사로 잡히거나 집착하거나 머물지 않는 다는 것은 쌍차(雙遮)를 말하며 고(苦)의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는 것은 쌍조(雙照)이니 이것이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定觀亦生亦滅)는 것입니다.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는 것은 변견이 아니며 생멸견해가 아닙니다.

생멸적인 변견은 바로 삼차원의 세계에서 보는 관점이고 생멸을 떠나서 생멸을 바로 본다는 것을 묘유(妙有), 즉 사차원의 세계에서 보는 견해로서 절대적인 견해입니다.

앞의 말씀을 잘 구별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집착을 떠난다고 하고서 결국은 또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고 했으니, 이 생멸은 보통 생멸의 생멸이 아닌가 하고 오해하게 되는데 이것은 생멸의 생멸이 아니고 불생불멸의 생멸, 즉 집착하지도 머물지도 아니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으니 여기서 말하는 생멸이라는 것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생멸, 중도제일의(中道第一義)의 생멸입니다. 생멸의 생멸이 아니라 쌍차에 의지한 쌍조의 생멸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는 마음의 의지처, 즉 분별심에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머물지도 아니한다고 부정하였으므로 그것은 모든 생멸을 부정한 것입니다. 모든 생멸을 부정하고 나니 고(苦)가 생하면 생한다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보아 분별심이 없이 이에 지혜가 생한다는 긍정이 나옵니다. 긍정은 심광명(心光明)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별심에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머물지 아니하면 심청정(心靑淨)이며 진공이며 쌍차입니다. 심청정하여 생멸을 바로보면 심광명이고 모유이며 쌍조입니다. 그러므로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보아서(定觀亦生亦滅) 진공묘유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혹(惑)하지 아니하며 의심(疑心)하지 아니하며 타에 의지하는 바 없이 이에 지(智)가 생하니 이것이 정관(正觀)이다」하는 것은 부처에도 의지하지 아니하고 조사에도 의지하지 아니하는 머물음이 없는 마음, 무주심(無住心)에서 진실의 지혜가 나타나는데 이 지혜를 정견(正見)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무주심이란 진여심, 반야심을 말하니 의지함이 없는 완전한 진공이 즉 진여심이니, 의지함이 없는 진여반야에서 지혜가 생하니 이것이 정견이라는 것입니다.

그 정견의 내용은 모두 집착심, 생멸심을 다 버리고 생멸을 바로 본다는 것이니 쌍차하여 쌍조한 것이며 진공묘유이며, 청정심을 얻으며 심광명이 바로 현전함을 말합니다.

이 대목은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학자들이 아직 완전한 연결을 못시키고 있습니다.

중도라 하여 양변을 여읜다, 쌍차한다 하는 부정의 면은 보통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는데 다시 양변을 살린다, 쌍조한다는 부정한 후에 다시 그것을 긍정하는 이것을 지금도 학자들이 잘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일본에서 좀 많이 연구했다는 학자들의 책을 봐도 양변을 여읜다는, 쌍차라는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드러나 있으나 그걸 가지고 증거를 대는데 있어 부정한 후 그것을 다시 긍정하는 면에 대해서는 즉 양변을 살리다, 쌍조한다는데 대해서는 부처님의 밀의(密意)로서 은밀히 말했다고만 말하고 확실한 증거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만치 이것이 어려운 대목입니다.

밀의로써 은밀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쌍차, 부정(否定)하신 후에 다시 분명하게 「고(苦)가 생하면 생한다고 보고, 타(他)에 의(依)하는 바 없이 이에 지(智)가 생하나니 이것이 정관이다」라고 쌍조, 다시 분명히 긍정하여 말씀하셨는데 무엇이 밀의로서 은밀하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가전연아, '일체는 있다(有)'라고 한다. 이것은 첫 번째 극단이니라. '일체는 없다(無)'라고 한다. 이것은 두 번째 극단이니라.[ 見] 가전연아, 여래는 이 양단(兩端)을 떠나서 [離見] 중도에 의해서 법을 설하나니라」

[非有非無, 亦有亦無, 亦生亦滅]

모든 것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는 어떤 실체가 있어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변견이니 하나의 극단이라는 것이다. 또 모든 것이 없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는 어떠한 실체도 없어서 영원성이 없어 소멸되어 버리고 만다는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변견이니 제 2의 극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존재에 영원성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양 극단을 떠나서 중도에 의하여 법을 설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즉 비유비무(非有非無)며 역유역무(亦有亦無)이며, 역유역무가 역생역멸(亦生亦滅)입니다.

앞 구절에 「마음의 의처에 취착하지 아니하고 계사되지 않아서 거기에 머물지도 아니한다」고 한 것은 양극단을 여윈 것이니 이것은 진공이요 쌍차입니다. 그리하여 「고(苦)가 생기면 생한다고 보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본다」는 것이니 이것은 묘유이며 쌍조이니 비유비무이면서 역유역무가 되는 것입니다. 생(生)이 즉 유(有)이며 멸(滅)이 즉 무(無)입니다.

여래(如來)가 정등각(正等覺)하고 법을 설하는 것은 중도이니, 중도는 모든 양 극단을 떠나서 양 극단이 서로 통하며 융합하는 것입니다

「무명(無明)에 연(緣)하여 행(行)이 있으며 행에 연하여 식(識)이 있나니라[亦生亦有] 이러한 것이 전고온(全苦蘊)의 집(集)[非無]이니라. 무명의 멸에 의(衣)하여 행(行)의 멸이 있고, 행이 멸하는 고로 식의 멸이 있나니라. [亦滅亦無] 이러한 것이 전고온의 멸이니라.」

처음엔 12연기(十二緣起)의 순관(順觀)을 듣고 끝에가서 전체를 들어 전고온의 집(集)이라고 하시니 이것은 사성제(四聖諦)의 집제(集諦)입니다. 앞에서 집제를 바로보는 사람은 없다는 견해가 없다고 했으니 없는 것이 아니다(非無)는 것입니다. 비무는 즉 또한 있다(亦有)는 말이니, 생(生)을 바로 본다(亦生)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 이해가 바로 서야 합니다.

집(集)을 바로 보는 사람은 없다는 견해(無見)가 없다 하니 없다는 것이 없다(非無)는 것입니다. 집을 바로보는 사람은 생을 바로 보는 사람이니, 그것은 또한 생함(亦生)이니, 그러므로 없다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내용적으로는 또한 있음이 됩니다. 생을 바로 보는 것을 집(集)을 바로 보는 것이므로 그것이 없다는 것이 없다(非無)는 것이므로 한가지 말 속에 두가지 뜻을 표현하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어째서 무엇이 있다, 무엇이 없다하는 변견에 집착하느냐 하면 그것은 사량분별 때문입니다. 아(我) 주관과 아소(我所). 모든 것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는 어떤 실체가 있어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변견이니 하나의 극단이라는 것입니다.

1 year ago

꽃은 자신을 떨구어 말끔히 지워냄으로써 열매를 잉태합니다.

매미와 뱀은 허물을 벗고 새 몸을 얻습니다.버리는 것과 얻는 것은 모두 자연의 섭리입니다. 버려야 얻습니다. 이를 거스르는 것이 역리(逆理)이고 이를 따르는 것이 순리(順理)입니다. 순리를 따르는 삶을 산 뒤에 맑고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가는 인생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늘 건강 하시고

행복한 봄날 되시길 바랍니다.

꽃은 자신을 떨구어 말끔히 지워냄으로써 열매를 잉태합니다.
2 months ago
좋아요 250개 돌파에 기여한 모든 회원에게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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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예전엔 해가 뜨고 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던 시절 이였지만 한때는 뜨는 해가 원망 스러운 시기를 지나 이젠 지는 해에

부끄럽지 않은 날이였나 되묻고 살아갑니다!

오늘도 당신이 있어 감사하다고 난 이렇게 하루를 비웁니다!

친구님 벗님 오늘 볼수 없어도 감사 하다는 말 전합니다!

편안한밤 되세요!

나는 당신을 용서 합니다!

나를 두고 먼저간 세월을!

1 month ago

Life

  • kwonjihyun
    kwonjihyun liked this · 1 year ago
  • kim-garden-ca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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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dong-jeong liked thi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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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edong-jeong reblogged thi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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