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edong-jeong - 지수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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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years ago

겸손 진정한 사랑은 근본적으로  서로의 존경과 겸손에서 나온다.  사랑으로부터 겸손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때, 그것은 매우 아름답다. 진정한 겸손함은 사랑의 향기로 피어난다. 그것은 억지로 만들어 내거나 연습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3 years ago

시간!

시간! 바람 처럼 멀리 떠날 날들이 속절없이 가까워 지는날! 별이 될 날들은 구름처럼 아쉬움을 남길걸 무슨 미련을 깔아 삶에 무슨 아쉬움이 있으랴. 구름에 가리어 달무리 처럼 잠시의 허무와 시련은 내자신을 여물게 하였다. 싸늘한 빰에 흘러내리던 속절없는 뜨겁던 눈물이 감추어진지 오래이지만!   버려진 시간을 나는 지금도 아쉬워  그리워 한다. 이 정도의 삶에서 난 지금 흔들린다. 불꺼진 밤 나의 침대에서 적멸을 생각한다. 나의 사후에는 아들 내소원 들어 주렴!   유골은 보관도 묘비도 쓰지 말거라! 내 정신을 가두었던 껍질은 불살라 인골은 절구에 넣어 부수어 붉은색 봉투에 담아 내가 좋아하는 곳 바람부는 정상에서 봉투를 열어 하얀 한지에 부어 세상 어디든 날아 갈수 있게 날려 주렴! 세상 살아보니 짝지는 내맘 알아주고 고민을 나누고 대화 할 수 있고 충고를 통하여 서로의 견해를 나눌 수 있는 짝을 만나거라!   신의와 믿음을 지킬 사람은 가장 좋은 상대이며 너의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이다. 나의 삶은 닮지 말아라! 그리고 나는 죽었다 살아난 제2의삶을 살며 이 환경에서 만난 새로이 만난 3사람은 동행 해야할 중요한 사람들이다. 감정적 상상과 생각은 버려라! 서로 덕이 되는 언어의 선택으로 진실로 대하도록하여라. 그리고 삶에서 돈을 쫒지 말거라. 돈을 찿아 돈을 쫒는자는 돈에 쫒길 것이다 돈을 쫓는 인간은 정신을 잃을때 까지 돈만 쫒아 다닐 인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찾아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세상 물질만능주의 안에 존재하는 있으니! 돈이 너를 찿아오게 하여라! 일부의 삶은 배우되 배운 기술로 벌은 돈은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쓰거라.   그리고 돈의 함정은 삶을 망가 뜨린다. 진실로 사람을 만나고 대하되 정은 주지 말거라. 세상사 아무련 순서는 없단다. 자신이 만든 도덕과 정의로 사심없는 미래를 만들어라. 사람은 만나되 시간을 두고 진실이 통하는 사람과 만나거라. 그리고 갑자기 생기는 행운은 없단다. 노력으로 만든 청결한 집도로 만든 환경과 지나침이 없는 지혜로 내일을 설계하여라. 그리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라! 서영이 사온 술한잔에 생각 많은밤! 쓸말이 적은밤 적은글은 후회없다. 나를 위하여 삶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챙겨 주거라. 내 삶은 2번째 태어난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산은 합천 소리길을 지나 합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 정상 바위가 있는곳이다. 20대에 가보고  아직 가보질 못했네. 언제 한번 가 보려무나...? 그곳이 불편하면 세상에서 내가 시작된 고향도 괜찮다. 아직 살아 있으니 회기본능이 생기네! 삶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귀한 사람의 분류에는 나를 생산 기회를 부여한 1촌과 고마움과 삶을 나눈 2촌 삶을 동반한  삼촌 그리고 무촌이 동반자이다. 희생의 가치를 가지고 귀한 사람의 순서를 정하는것이다. 세상살이 만만하게 보지 말거라! 그래도 내편은 만들고 살아라. 배웠지만 내편을 만드는 방법을 몰라 아직도 삶을 배회하며 사는이 많으니! 나이 이십의 중반을 넘으면 도덕의 균형이 잡혀 삶의 기준을 실천으로 옮길 시기이다! 감성의 시간이 지나 또다른 기회에 또 만나세나 싼!

8 months ago

돈으로 인하여 가까운 사람이 멀어져가고 돈으로 변화한 세상살이가 심지어 오랜 친구의

영혼을 병들게 하였고 고단한 삶에서 나는 벗을 잃은 아픔을 가진 영혼 되었다.

가진것이 없어 나눌것이 없는

시간속에서 세상의 빚을 진 친구여

돈으로 인하여 가까운 사람이 멀어져가고 돈으로 변화한 세상살이가 심지어
돈으로 인하여 가까운 사람이 멀어져가고 돈으로 변화한 세상살이가 심지어

그대 잘지내고 있는가?

1 month ago

* 불교의 이해 *

불교의 근본 사상...(6) 가전연경(迦전延經)의 정견(正見)

[불교의 근본사상] 매이지 않고 여의지 않는 영원한 진리

10. 가전연경(迦전延經)의 정견(正見)

가전연경이란 근본불교에서 가장 핵심되는 경입니다. 이 경은 부처님이 정등각(正等覺)한 내용, 즉 중도(中道)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가전연경에 대해서 논의가 많았습니다. 그런 만큼 아주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또 중도에 대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면 이 가전연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가전연이란 부처님 신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논의제일(論議第一)이었던 가전연존자를 말합니다. 아주 의논을 잘하고 논의에 밝은 분이었습니다.

어느날 가전연이 부처님에게 물었습니다.

「대덕(大德0이시여 정견(正見)을 갖추어야 한다, 정견을 갖추어야 한다 하시니 정견이란 어떤 것입니까?」

모든 세간의 학문이나 종교는 무엇이 있다(有)든가 무엇이 없다(無)든가 하는,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見)의두 가지 견해에 떨어져 되어 있습니다. 일체의 모든 상대적인 대상에서 가장 기본되는 견해가 유·무라는 견해이니 이 상대적인 유·무가 완전히 해결되면 그밖의 모든 상대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유와 무를 대표로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먼거 고(苦)와 낙(樂)을 가지고 말씀하셨지만 그때는 오비구(五比丘)가 고행(苦行)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고와 낙을 말씀하셨던 것이고 이 가전연경에서 정견(正見)이라는 근본문제를 가지고 깊게 설명함에 있어서 일체 세계의 대표적인 상대인 유와 무를 들은 것입니다.

변견(邊見)이란 한쪽으로 치우친 편견이라는 뜻입니다.

「가전연아, 정혜(正慧)로써 여실(如실)히 세간의 집(集)을 관(觀) [正觀生]하는 자(者)에게는 이 세간에 무인 것이 없다.[非無] 가전연아, 정혜로써 여실히 세간의 멸(滅)을 하는 자에게는 이 세간에 유인 것이 없다.[非有]」

남전대장경 제13권 상응부경 가전연경(南傳大藏經 第十三卷 相應部경 迦전延經)

집(集)이란 4성제(四聖제)의 집제(集제)이니, 집제란 연기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기법(緣起法)에도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관으로 연기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이 일어난다,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생겨나 살아가고 있고, 있음으로 하여 결국 존재해 있음을 말하니 이러한 현상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세간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여 보았자 통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 책상도 있고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세상 모든 것이 없다는 견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생(生)하는 법을 바로 본다(正觀生)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다 존재해 있고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있는 것을 바로 보면 없다는 견해는 있을 수 없으므로 결국 없음이 아닌(非無) 것입니다.

멸(滅)이란 사성제(四聖제)의 멸제(滅제)이니 멸제란 역관(逆觀)으로 연멸법(緣滅法)을 이르는 말이니 설명하자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것으로써 책상도 나무가 썩어 버리면 없어지고 너도, 나도 촛불도 시간과 공간이 다하면 없어지기 마련이며 그러므로 모든 것은 또 다른 한편에서 관찰해 보면 소멸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을 없어지는(滅) 법을 바로 본다.(正觀滅)는 것이며 이런 견해로 세상을 보면 모든 존재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내가 없는 것을 바라보면 있다는 견해는 있을 수 없으므로 결국 있다는 것이 아닌(非有)것이 됩니다. 따라서 없는 것이 아닌 있다는 견해는 틀렸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없어지는 것을 보고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고 다시 모든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견(有見)측에서는 무견(無見)이 틀리고 무견 측에서는 유견이 틀리는 것입니다.

「가전연아, 이 세간은 다분히 방편(方便)에 취착(取着)하며 계교(計較)하며 사로잡히(囚)나니 성제자(聖弟子)는 이 마음의 의처(依處)에 취착하며 계편(計便)되어서 「나의 나」라고 사로잡히지 않으며 착(着)하지 않으며 머물지(住) 않고[囚有消滅], 고(苦)가 생(生)하면 생한다고 보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보아[定觀亦生亦觀] 혹(惑)하지 않으며 의심(疑心)하지 않으며 타(他)에 연(緣)하는 바 없이 이에 지(智)가 생(生)하나니라」

이 세상 사람들은 어째서 무엇이 있다, 무엇이 없다하는 변견에 집착하느냐 하면 그것은 사량분별 때문입니다. 아(我) 주관과 아소(我所), 객관등의 모양에 사로잡혀 사량분별하는 이것을 여기서는 방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변견이 생기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사량분별에 의한 집착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제자, 즉 부처님의 제자는 사량분별에 의한 집착심을 버리고 모든 분별심, 생멸심을 떠나버리며 결국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닌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고(苦)가 생하면 생한다고 하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바로 본다는 말입니다. 그냥 고가 생하면 생한다고 보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보는 것과는 차원이 틀립니다. 세간에서 보는 것은 분별심으로 보는 것이고 부처님의 제자는 분별심을 떠나서 보기 때문에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집착하고 계사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로 잡히거나 머물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무주심(無住心), 무분별심(無分別心)에서 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변견은 분별심이 근본이 되어 있고 부처님 제자의 정견은 무분별심이 근본이 되고 있는 것이니 불생불멸의 경지에서 생멸을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는 모든 분별에 사로 잡히거나 집착하거나 머물지 않는 다는 것은 쌍차(雙遮)를 말하며 고(苦)의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는 것은 쌍조(雙照)이니 이것이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定觀亦生亦滅)는 것입니다.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는 것은 변견이 아니며 생멸견해가 아닙니다.

생멸적인 변견은 바로 삼차원의 세계에서 보는 관점이고 생멸을 떠나서 생멸을 바로 본다는 것을 묘유(妙有), 즉 사차원의 세계에서 보는 견해로서 절대적인 견해입니다.

앞의 말씀을 잘 구별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집착을 떠난다고 하고서 결국은 또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본다고 했으니, 이 생멸은 보통 생멸의 생멸이 아닌가 하고 오해하게 되는데 이것은 생멸의 생멸이 아니고 불생불멸의 생멸, 즉 집착하지도 머물지도 아니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으니 여기서 말하는 생멸이라는 것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생멸, 중도제일의(中道第一義)의 생멸입니다. 생멸의 생멸이 아니라 쌍차에 의지한 쌍조의 생멸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는 마음의 의지처, 즉 분별심에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머물지도 아니한다고 부정하였으므로 그것은 모든 생멸을 부정한 것입니다. 모든 생멸을 부정하고 나니 고(苦)가 생하면 생한다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보아 분별심이 없이 이에 지혜가 생한다는 긍정이 나옵니다. 긍정은 심광명(心光明)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별심에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머물지 아니하면 심청정(心靑淨)이며 진공이며 쌍차입니다. 심청정하여 생멸을 바로보면 심광명이고 모유이며 쌍조입니다. 그러므로 생함과 멸함을 바로 보아서(定觀亦生亦滅) 진공묘유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혹(惑)하지 아니하며 의심(疑心)하지 아니하며 타에 의지하는 바 없이 이에 지(智)가 생하니 이것이 정관(正觀)이다」하는 것은 부처에도 의지하지 아니하고 조사에도 의지하지 아니하는 머물음이 없는 마음, 무주심(無住心)에서 진실의 지혜가 나타나는데 이 지혜를 정견(正見)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무주심이란 진여심, 반야심을 말하니 의지함이 없는 완전한 진공이 즉 진여심이니, 의지함이 없는 진여반야에서 지혜가 생하니 이것이 정견이라는 것입니다.

그 정견의 내용은 모두 집착심, 생멸심을 다 버리고 생멸을 바로 본다는 것이니 쌍차하여 쌍조한 것이며 진공묘유이며, 청정심을 얻으며 심광명이 바로 현전함을 말합니다.

이 대목은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학자들이 아직 완전한 연결을 못시키고 있습니다.

중도라 하여 양변을 여읜다, 쌍차한다 하는 부정의 면은 보통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는데 다시 양변을 살린다, 쌍조한다는 부정한 후에 다시 그것을 긍정하는 이것을 지금도 학자들이 잘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일본에서 좀 많이 연구했다는 학자들의 책을 봐도 양변을 여읜다는, 쌍차라는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드러나 있으나 그걸 가지고 증거를 대는데 있어 부정한 후 그것을 다시 긍정하는 면에 대해서는 즉 양변을 살리다, 쌍조한다는데 대해서는 부처님의 밀의(密意)로서 은밀히 말했다고만 말하고 확실한 증거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만치 이것이 어려운 대목입니다.

밀의로써 은밀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쌍차, 부정(否定)하신 후에 다시 분명하게 「고(苦)가 생하면 생한다고 보고, 타(他)에 의(依)하는 바 없이 이에 지(智)가 생하나니 이것이 정관이다」라고 쌍조, 다시 분명히 긍정하여 말씀하셨는데 무엇이 밀의로서 은밀하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가전연아, '일체는 있다(有)'라고 한다. 이것은 첫 번째 극단이니라. '일체는 없다(無)'라고 한다. 이것은 두 번째 극단이니라.[ 見] 가전연아, 여래는 이 양단(兩端)을 떠나서 [離見] 중도에 의해서 법을 설하나니라」

[非有非無, 亦有亦無, 亦生亦滅]

모든 것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는 어떤 실체가 있어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변견이니 하나의 극단이라는 것이다. 또 모든 것이 없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는 어떠한 실체도 없어서 영원성이 없어 소멸되어 버리고 만다는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변견이니 제 2의 극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존재에 영원성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양 극단을 떠나서 중도에 의하여 법을 설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즉 비유비무(非有非無)며 역유역무(亦有亦無)이며, 역유역무가 역생역멸(亦生亦滅)입니다.

앞 구절에 「마음의 의처에 취착하지 아니하고 계사되지 않아서 거기에 머물지도 아니한다」고 한 것은 양극단을 여윈 것이니 이것은 진공이요 쌍차입니다. 그리하여 「고(苦)가 생기면 생한다고 보고 고가 멸하면 멸한다고 본다」는 것이니 이것은 묘유이며 쌍조이니 비유비무이면서 역유역무가 되는 것입니다. 생(生)이 즉 유(有)이며 멸(滅)이 즉 무(無)입니다.

여래(如來)가 정등각(正等覺)하고 법을 설하는 것은 중도이니, 중도는 모든 양 극단을 떠나서 양 극단이 서로 통하며 융합하는 것입니다

「무명(無明)에 연(緣)하여 행(行)이 있으며 행에 연하여 식(識)이 있나니라[亦生亦有] 이러한 것이 전고온(全苦蘊)의 집(集)[非無]이니라. 무명의 멸에 의(衣)하여 행(行)의 멸이 있고, 행이 멸하는 고로 식의 멸이 있나니라. [亦滅亦無] 이러한 것이 전고온의 멸이니라.」

처음엔 12연기(十二緣起)의 순관(順觀)을 듣고 끝에가서 전체를 들어 전고온의 집(集)이라고 하시니 이것은 사성제(四聖諦)의 집제(集諦)입니다. 앞에서 집제를 바로보는 사람은 없다는 견해가 없다고 했으니 없는 것이 아니다(非無)는 것입니다. 비무는 즉 또한 있다(亦有)는 말이니, 생(生)을 바로 본다(亦生)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 이해가 바로 서야 합니다.

집(集)을 바로 보는 사람은 없다는 견해(無見)가 없다 하니 없다는 것이 없다(非無)는 것입니다. 집을 바로보는 사람은 생을 바로 보는 사람이니, 그것은 또한 생함(亦生)이니, 그러므로 없다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내용적으로는 또한 있음이 됩니다. 생을 바로 보는 것을 집(集)을 바로 보는 것이므로 그것이 없다는 것이 없다(非無)는 것이므로 한가지 말 속에 두가지 뜻을 표현하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어째서 무엇이 있다, 무엇이 없다하는 변견에 집착하느냐 하면 그것은 사량분별 때문입니다. 아(我) 주관과 아소(我所). 모든 것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는 어떤 실체가 있어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변견이니 하나의 극단이라는 것입니다.

5 months ago

이별 24126-12시10분 금요일

무언가를 잃어 버린다는 것은 가슴속 간직한 것과 헤어지는 것이다.

이별 24126-12시10분 금요일
이별 24126-12시10분 금요일
이별 24126-12시10분 금요일
이별 24126-12시10분 금요일
이별 24126-12시10분 금요일

다음 삶이 있다면 부디 행복한 사람으로 태어나 삶이 깨어짐이 없는 행복을 추구하렴 나의 단비야!

오늘은 키우던 가족을 묻고 돌아왔다. 가슴 한쪽이 무너저 내린다.

부디 이승 보다 나은 천국에서 행복 하여라! 단비야!

3 months ago

☆☆☆

[ 청담 장윤숙 시인의 러브레타 ]

누가 썼는지 참 잘 쓴 글이라 소개합니다. 

아쉽게도 글쓴이를 알 수가 없군요.

《 20,30,40,50,60대~ 젊은이들은 들어라! 》

몇 년 전 돌아가신 

우리 외할매는 말했다. 

왜정 때, 

그래도 이 땅보단 뭔가 나을 듯해 만주로 갔단다. 

그리고 뙈놈들한테 갖은 무시를 당하다가, 

내 나라가 독립됐단 소리 듣고 이고 지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단다. 

그때 우리 어매는 

외할매 어깨 위에서 두만강을 건넜단다. 

그래, 우리 어매는 만주에서 태어났다. 

어느 놈들 논리라면 뙈년이겠구나, 

어쨌든 중국 땅에서 태어났으니...

누구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그래서 친일파란 소리 들었다니 그렇겠구나. 

1917년 태어난 박정희도 만주로 갔지,

그리고 군인이 되었다. 

그래서 친일파 라더구나. 

그런데 그가 태어났을 때

그가 속할 나라는 이미 일본뿐이었다. 

태어난 게 태어난 자의 죄인 거냐? 

너희들은 부모를 골라서, 

나라를 골라서 태어날 수 있었더냐? 

태어난 게 어매 잘못이냐? 

박정희 잘못이냐 ? 

못 먹고 못 살아 찢어지게 가난하여

조국도 없던 그 시절이 잘못 아니더냐 ?

청나라로 끌려갔던 여인들이

환향녀로 매도되어 지금도 

그 이름이 남아있지, 

화냥년 !

지켜지지 못해

피해 받은 그들이 무슨 잘못 이더냐? 

일제 때

이 나라의 꽃다운 처녀들이

성 노예로 끌려갔다고 분개하더라! 

그게 누구 잘못이냐? 

그녀들의 잘못이냐? 

일본놈의 잘못이냐? 

그러지 않게

지켜줄 나라가 없어지게 된 탓 아니냐? 

그런데 나라를 일제에 넘기고도 

이씨 왕가 일족들은

일제가 망하는 그날까지도 호의호식했다 하더라.

그래 우리 외할매는 수꼴이었다.

아니 우리 할매도 할부지도 수꼴이었다. 

나라가 없다는 건, 

지킬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지.

그래, 너희들이 비웃는

늙어서 죽어야 하는 80~90대는 

내 나라가 없어 서럽던 그런 분들이다. 

그래서 그분들은 경험으로 안다. 

'내 나라’라는 게 울타리라는 것을,

나라가 없이는 나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안보, 안보 하며

지팡이를 짚고 꼬부라져서라도 태극기를 들고 나서는 것이다.

이제 80을 앞둔 우리 어매는 말한다. 

나무껍질 벗겨서 먹어 봤냐고?

부황이 들어 온몸이 퉁퉁 부어봤냐고?

쌀 한줌에 고구마 줄기를

한 솥 넣어 풀죽 끓여 먹어봤냐고?

전염병이 돌면 픽픽 죽어 나가는 사람을 본 적 있냐고?

공부하고 싶어도 학교가 없었던 그 시절을 겪어 봤냐고?

미국? 

양키? 

우리 어매는 그런 거 모른다. 

시골 초봄,

누렇게 떠서 죽어가다가

학교에서 배급으로 나눠준

우유가루로 죽을 끓여 먹고 설사를 할 망정 그 덕분에 살았다 한다. 

우리 어매도 6.25는 이제 가물가물하다 한다. 

벌써 70년 전 일이다. 

그래도 우리 어매는 

단 하나는 안다. 

배고픔이

사람을 얼마나 짐승으로 만드는지를!

우리 아배는 말한다. 

5.16혁명을 국민들은 반겼다고. 

전쟁은 끝났지만, 

먹고 살길은 막막했고 못 먹고 못살던

국민들의 패배감은 끝이 없었는데, 

민주주의 하겠다던 .. .

4.19 다음에 나라는 되레 난장판?

데모 천지가 되었다고. 

그래서 그때는 또 한 번 세상이

뒤집어 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득했다고 그럴 때 난장판인 나라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배고픔을 면하게 해준 건 박정희였다고. 그래! 

그래서 우리 어매도 아배도 태극기를 들고 나섰다!

너희들이 말하는것처럼

늙어 빠져서 뇌가 마비되어서,

세뇌되어서가 아니라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말아야겠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그래도 이만큼 살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은혜 갚음 때문에, 

그 뼈저린 경험 때문에 그러하다. 

너희들이 보기에는 우습게 보이느냐? 

판단력이 흐려진 늙은이들로 보이느냐? 

장기집권이 잘못됐다고 하느냐? 

유신독재 잘 못됐다고 하느냐? 

그러나 그 시대를

열심히 일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그래도 고마웠다고!

먹고 살 만하게 되었기에

그 다음에 저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고 뭐고가 있게 되었다고!

나라 뺏긴 서러움을 아는 사람,

6.25를 겪은 사람들이

바로 너희들이 말하는 늙어 빠진 노인네들이다. 

너희들이

결코 알지 못하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늙은 수구꼴통들 이다.

그들이 가난을 원수처럼 여겨

나라를 일으키는 초석이 되었다.

자기 한 몸 희생해서 나라를 위해 살아왔다. 

나라 없는 설움, 약해서 겪은 전쟁,

그 참상을 알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추구하는 박근혜 밉다고

앞 뒤 가리지 않고 쫓아내고,

공산주의 추종할려는

문재인 좋다고 ‘대깨문’ 해서,

그래 지금 만족스럽느냐? 

니들 일자리부터 날아가고 

경제는 난장판인데 

니들의 ‘이니’는

‘정으니’에게 퍼줄생각에 여념이 없더구나.

그게 니들이 바라던거냐?

아프칸이 탈레반에게 점령되어

참수 당하는 뉴스를  보고도

정신을 못차리냐?

그래 좋다 촛불민주주의,

그런데 그러다 나라의 경제가,

안보가,

다 깨지든 말든 

그래도 좋다는 거냐? 

알아 두어라. 

나라가 있어야 누울 자리가 있고

나라가 강해야 너희들도 있다는 것을. 

너희들이 때로

나라를 욕하고 촛불을 들 자유도 

그 나라가 있고서야

비로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아 두어라. 

장미꽃은 향기롭지만

결코,

수프를 끓여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배추 시래기로라도 배를 든든히 하고서야 장미향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무엇이든 기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희들도 잘 알 것이다. 

그 기본은 바로 "나라" 다.

그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 

너희들의 나라이다.

이 멍청하기 그지없는 불쌍한~~~

20~

30~

40대들아

정신차려라!

네놈들이 나라가없어도

지금처럼 대가리

하늘로 처들고 살수 있을것이라 생각 하느냐???

나라는  첫째가 안보다.

북쪽의 핵을 머리에 이고 있으며

중국의시진핑과 그수하들은 시도때도 없이 한반도의 모든것들이

자기들 것처럼

온갖 수단을 동원해 별의별짓 다하며

대한민국의 일에 사사건건 시비하고,

재한 중국놈들

특히 조선족들을 동원해 온갖 참견하며,

촛불들고 못된짓에는 다동원되고,

지랄발광들 하고,

안보 못지않게 주요한것이 경제 아닌가,

헌데 의원수 많다고

더불당은 국회폭력을 극악으로 휘들러서,

안보와 경제를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는나라의 기둥들을

29번이나

탠핵하여 쫒아내고,

일할 예산은

모두 삭감하여 손발을 묶어놓고 ...

아이고 참,어렵다.답답하다.

그래놓고도 입만 열면 경제고,민생 이란다.

오호,통제라! 이를 어이 풀어야 할꼬?

이나라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살길이 열리도록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나라 백성들이

깨닫고 바보짓을 하지 않게 하시고,

총명함을 되찾게 하시옵소서!이땅에서 태어났으니,

이땅을 위해 땀흘리며

이땅을 위해 몸바쳐 일하다가

이땅에 묻힐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소서.

2025. 1월 어느날. 논산에서••• ​ 

*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1 month ago

사랑 그것은!

참고 인내하며!

감래하며 헌신하며!

상대의 상처를 담을 넉넉한 그릇을 준비한 끝없는 미련을 떨쳐버릴

시련을 버리는 연습을 갈구하는 것.

그러나 사랑은 나를 지키고 미련을 버려 자신을 본 모습을 복원하는것.

버려서 남는 것은 미련이다.

이 미련 마져 지우개 없이 지워 삶을

지워 운명화 시키는것!

청춘의 시간을 지나 사랑을 배우고 진정함을 배운 현실 시간은 돌고 돌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허허로운것에 만족을 갈구하지만 결제의 날은 얼마나 남았을까?

목적없는 타성에 늪에 갚혀 가치 없는 시간만 축내고 있다.

과거를 버려 편안해지는 다소한 삶에서 만족해가는 일상이 이제 연습이 되어간다.

사랑 그것은 혼돈의 시간을 냉정과 정열로 미련없이 사는것!

6 years ago

뜨겁던 햇살은 식은지 오래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뒤뜰의 과수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목마름은 초목 과수 뿐이겠는가?

몽매간에 그리움이 지워지지 않는 계절 앞에 또다시 잠시 시간의 멈춤을 회상 하노라.

유월은 팔남매 중 칠남매를 장승시킨 어머님의 기일이 있는달이다

삶이 그냥 만들어 졌을까?

십이년이 되어도 아직 남는 아쉬움은 당신의 수고가 이자식에게는 아름답고 감사 하단 말밖에 다른 언어론는 불효라는 말뿐이라 적을 언어가 없습니다.

먼저가신 당신을 보내시고 두번의 강산변화를 혼자 이겨내신 어머님 당신을 생각하니 숙연해집니다.

뜨겁던 햇살은 식은지 오래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뒤뜰의 과수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뜨겁던 햇살은 식은지 오래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뒤뜰의 과수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뜨겁던 햇살은 식은지 오래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뒤뜰의 과수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지금 생각하니 그시절의 상흔이 이자리를 지키게한 든든한 버팀목이였습니다.

당신의 노고가 있어 이렇게 삶을 유지하니 그노고가 새삼 가슴 아련한 추억이라 논할려니 가슴이 즈려 옵니다!

얼마전 몽매간에 보는 당신을 꿈인줄 알았지만 말없는 당신을 붙잡아 보고 싶지만 그냥 보내고 말았습니다.

꿈에서 깨어나서 잠시 아쉬움에 잠긴시에는 회상의 상념에 혼자 읆어봅니다 ^어머님!

이 그리움이 아직 다하여 묻어지지 않고 가슴 한켠에

멍울이 되는 유윌이 이제 몇일 남지 않았습니다

뜨거움이 시작되고 반 백년의 시간을 살아온 시간은 오늘도 멈춤이 없습니다.

남은 우리 육남매 아름답게 살아 갈지니 걱정없고 고뇌가 없는 아름다운 천국에서 우리 동생 둘이랑 천국의 자유와 행복을 만드시고 삶이 다하여 다시 뵙는 날 당신의 가슴에 안기고 싶습니다

이천십팔년년유월이십오일

1 month ago

멈춤이 있는곳!

시선은 고정 되었지만 생각은

아직 집중 되는것은 욕심어린

잡 생각들이다!

어디쯤에 나는 서있는가?

생각이 마주치는곳에 난 아직

서 있다.

아름다운곳 그곳이 이곳임을

알기에 난 미련을 지워 공간이

주는 편의를 제공 받아 이곳에

머문다!

시 공간을 초월한 자유는 찾지

못해도 안식은 찾아가고있다!

누굴 탓하고 누굴 원망하던 동심

은 지워지지 않는 미련이건만!

추운 엄동은 온기를 찾지 못한

미련의 빚덩이만 시린 시간이다!

사람 살이 다 그런것이지 하던

지난 대화가 그리운 날이다!

편한밤 되시구려!

그리운 나의 봄날이여!

  • jaedong-jeong
    jaedong-jeong reblogged this · 1 year ago
  • wjdwoehd-jeong
    wjdwoehd-jeong reblogged this · 8 years ago
jaedong-jeong - 지수화풍
지수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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