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랬다. 자라면서 마음 붙일 데라고는 문학과 영화가 전부였다. 세상은 넓으니까 어딘가에는 나와 닮은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장의 상처도 작게 느껴졌다.
1장과 2장에서는 두 사람 모두 어떤 출발선에 선 것처럼 보여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다거나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이주한다거나. 그러다 3장에서는 한 차례 결과를 마주하죠. 영호는 배우가 되려다가 그만두었고, 꿈에 의하면 주원은 독일에 갔다가 공부에도 사랑에도 실패한 후 빈손으로 돌아왔어요. 이런 낙차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신: 영호는 제 것을 가지려는 욕심보다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기를 포기한 이유도 애인이 싫어하는 일을 할 수 없어서라고 하잖아요. 미움 받을까 봐 걱정하는, 그러다 보니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는 친구 아닐까요. 촬영하면서 그런 생각이 점점 강해졌어요.
박: 주원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하는 인물 같아요. 속으로는 영호를 그리워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영호를 두고 유학을 떠나잖아요. 영호를 선택하지 않은 건, 결국 주원이 지닌 새로움을 향한 욕구 때문이라고 봤어요.
갑자기 연기에 빠졌던 이유는요?
박: 속에는 표현하고 싶은 게 많은데… 제가 제 입으로, 제 입장에서 말하는 건 힘들었어요. 근데 배우에게는 명분이 생기잖아요. 주어진 역할이자 임무니까요. 연기를 통해 그동안 밖으로 꺼내지 못한 것을 표출하면, 제가 좀 행복해질 것 같았어요.
담아두는 이야기가 많았다는 뜻이죠? 출구가 필요한데, 언어라는 도구만으로는 힘들고.
박: 네, 많이 참는 성격이에요. 자신한테 관대하지도 못하고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냥 삼키다 보니 제가 점점 안으로만 들어가는 거예요. 언젠가부터 ‘난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는구나, 그게 제일 편하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남한테 상처를 줄까 봐 무서웠나요?
박: 네, 그리고 제가 상처받는 것도요. 말하지 않으면,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잖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도 이상하게 괴로워져요.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더라고요. 어떤 접점도 만들지 않는 상황이 제 마음에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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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다는 건 사실 참 좋은 일이죠.
박: 저한테 세상은 시시각각 달라져요. 슬픈 것도 감사한 것도 너무 많고, 자꾸 새로운 것이 전해지다 보니 하루에도 감정이 몇 번씩 요동치는 거예요. 어제도 그랬어요. 감독님과 같이 있는데, 온갖 감정이 뒤섞이더라고요. 슬프면서 감사하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요. 남들 눈에는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데, 제가 이만큼 느낄 수 있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 몇 시야 얼마나 됐어 집이 어질러 조금 치워야겠어 여기 우유는 뭐야 대체 얼마나 됐어 이거 먹어도 되는 거 맞지 맞지 자기야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어 어이없지 이거 안 먹을 거면 치울게 다 버릴 거지 방을 치우면서도 보이는 너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오늘도 치우긴 글렀지 기억나 어제 난리 부르스를 치렀지 내 몸에 쌓인 피로들을 전부 비웠지 나의 밀린 작업들을 전부 미뤘지 부재중 기록들 내 지인들은 삐졌지 나는 인형처럼 누워 네가 안을 수 있게 나는 인형처럼 누워 멍청할 수 있게 근데 진짜 멍청한 건 창문밖에 쟤네 진짜 이해 안 돼
ALMOST HAD A HEART ATTACK
우리는 모두 매일매일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중이지. 너는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나야. 아니면 내가 되어가는 중인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보는 게 무서워 견딜 수 없어.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설리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면 그게 일이든 사랑이든 뭐든, 전력으로 내달린다.
한 소녀의 내밀한 이야기이자 웅장한 대서사시가 도착했다. 시대의 재난도 사랑의 기쁨도 고통과 상실도 거기에 있다. 영화 <벌새>의 김보라 감독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전문
꿀을 찾아 수천 번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은희는 주변인들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사람들의 원형적인 욕망은 결국 같다. 아주 단순하게 세상을 나누면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이 있다. 그런데, 사랑 받는다는 말은 절반이다. 마지막에 은희는 사랑을 결국 찾아낸 것이 아니다. 남에게 사랑 받으려는 투쟁을 멈춘 것이다. 사랑은 결국 나 자신에게서 나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받은 사랑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 그래서 은희를 혼자 남겨둬야 했다. 사랑을 받으려는 투쟁이 아니라, 사랑을 찾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벌새>는 모든 게 느리게 온다. 성수대교 사고도 아주 후반부에야 나오더라. 그리고 그에 대한 리액션도 즉각적이지 않고, 이후의 궤적을 길게 좇는다. 그 호흡이 좋았다. 의도했던 걸 예리하게 봐주셨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서 성수대교가 언제 무너지나 하면서 봤다더라. 우리는 언제나 공동의 환영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일상엔 항상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나는 십 대 때 그 불안을 마주했다. 사람들은 사회가 만든 거대하고 끔찍한 환영 속에서 남들이 말하는 기준을 쫓아가려고 허덕이면서, 뭘 안 가지면 안 될 것처럼 마음 졸이면서, 가졌더라도 어느 순간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이 영화에서 계속 그런 불안이 느껴지길 바랐다.
편지 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다만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불가항력의 재난과 고통, 그럼에도 기쁨과 행복. 그 역설이 삶 같았다. 내가 투영한 인물은 은희지만, 어른이 돼서 말하고 싶었던 건 영지의 입으로 말했다. 어릴 땐 모든 것이 환영 같았고, 괴로웠다. 하지만 깨질까봐 두렵도록 아름답고 감사했던, 나를 변화시켰던 만남들이 있었다. 영지선생님 같았던 사람들이었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벌새처럼 날아다니면서 본질을, 사랑을 찾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에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삶이 비정한 동시에 아름답고, 불안과 공포만큼 사랑과 기쁨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구호 같은 것이 아니다. 구체적이고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영화 속 빛과 어둠, 따듯함과 서늘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촬영도 그 구체성을 느끼게 했다. 따듯하면서 불안한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 안에 빛과 어둠이 같이 있었으면 했다. 밝기만 하면 여기가 밝은지 알 수 없으니까. 실내조명을 거의 안 쳤고, 거의 자연광과 가정집에 있는 백열등만을 썼다. 우리가 실제로 집에 있을 때 낮엔 불 안 켜놓고 있지 않나. 그 어둑한 느낌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서늘함이 나왔다. 촬영 전부터 강국현 촬영감독과 각자의 유년시절을 이야기하며 <벌새>라는 이야기를 함께 체화한 상태에서 일어난 마법 같은 일들이 있었다. 은희가 거실에서 춤추는 장면은 오로지 롱샷인데, 촬영감독님이 부엌의 식탁 의자를 걸쳐서 찍었다. 텅 빈 거실에서 덩그러니 놓인 상황에서, 인접광도 없는 햇빛 아래서, 마치 식탁과 의자들까지도 그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듯이. 그 디테일이 살렸다.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요즘 주변에 우울증을 안 겪는 사람이 없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우울이 담긴 정서적인 SF를 구상하고 있고, 혹은 엄마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아주 생뚱맞은 게 될 수도 있고. 운명에 맡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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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만나는구나 서로 감정에 부닥치고 감정으로 힘을 내고 아무 상관도 없던 삶이 엮어지고 서로 같이 서서 있게 되는구나 결국 사람은 감정이고 감정은 너무 쉽고 너무 힘있고 너무 귀하고 너무 싸구려고
너무 그립다
그렇다 지금